국회의원선거를 마쳤다. 4월10일 국회의원 선거를 우리 지역은 예상되로 국민의힘 임이자의원께서 당선 되었다. 우선 당선의 영광을 축하드린다.앞으로 4년 우리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에게 문경에 사는 민초는 당선자에게 더욱 문경을 위해 일해줄 것을 지면을 빌어 건의드린다.곧 내년 국비 예산편성 시점이 5월로 닥아온다. 다행히 문경 국회의원은 연속 당선이 되어 지역발전에 따른 사업추진은 중단없이 계속될 것이라 본다. 그러나 지금 문경지역의 국비확보 사업장을 둘러보면 없다. 정부가 전체 지원하는 국비사업 중 복지사업외에는 뚜렷한 사업장이
세상 돌아가는 꼴이 벌집을 쑤셔 벌들이 사람의 몸에 붙어 침으로 쏘아대는 듯 따갑고 소란하기 짝을 찾을 수 없다. 심지어 텔레비전을 켜기가 무서울 정도이고 때로는 소음이 끼치기도 한다. 아이를 교육 독소가 아닐 수 없다. 촉법 소년 소녀들의 중범죄 정도가 보도되는 것은 당연한 사회문제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크나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껄이는 말마다 믿을 수가 없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기도 하고 빌어벅은 강아지가 호랑이를 건드리는 것같이 우단 하기도 하다. 가짜 뉴스와 괴담들이 판을 치고 있다니 말이나 되는가? 그것도
어제 오후 6시 투표 마감과 동시에 출구조사를 발표한 순간부터 개표가 완료 드러난 총선의 결과를 두고, 역대급 야당의 승리다. 역대급 여당의 참패라며, 사람들이 놀라며 저마다 제기하는 승패의 원인과 앞으로 여야 관계 설정과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의 정치가 어떠해야 한다는 또는 할 것이라는, 여야를 대표하는 평론가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려니, 여전히 원인을 모르고 자기들이 믿는 권력 앞에 엎드리는 삼류들의 잡소리들이라는 생각이다. 봉성산 촌부가 보는 진짜 승자와 패자는 여당도 야당도 아니다. 양극단의 정치판에서 때에 따라 때에 맞추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딘들 다를까 마는 대다수 사람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남의 말을 하기를 즐긴다. 상하노소 계층 없이 말이다. 그래서 아니면 말고라는 무책임의 연속이 지속되기도 한다.세상에 고정해 놓은 특별한 목표도 없이 허구한 날 일상이 되고 말았다. 뜬구름을 잡듯이 자신이 하기 좋고 상대가 듣기 좋은 말로 현혹하기도 한다. 원인도 모르고 피해를 보는 언어폭력이 사회문제가 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 대다수다. 마치 과녁도 없이 화살을 쏘는 것 같은 현상이다. 세상 삶이란 부유 하거나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을 가지거나 하
이제 22대 총선도 10여일 남았다. 지난 4년동안 지역의 민의를 대표한 국회의원의 평가와 앞으로 문경의 비젼을 밝힐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로시민으로는 기대와 평가의 시간이 되었다.지금 이번 선거를 보는 입장에서 심정은 매우 착잡하다. 평소 시민들이 못다한 정책발의나 건의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며 지방은 사라지고 중앙정치에 예속된 선거를 임하고 있다. 선거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이야기 하면 뭣하겠나 누구나 다 아는 이론을 국힘이나 더민주나 야당이나 지역개발에 대한 정책공약을 듣고 싶은데 정작 필요한 이야기는 별로 없고 찍어달라는 이야
총선을 앞둔 시국이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치고받고 빠지면서 유권자를 현혹하면서 자신들의 주머니 속의 물건인 양 자신만만하다. 또한 상대는 정치적 동지가 아니라 철천지한이 맺힌 원수들인 양 대결장이 되어가고 있다. 유권자들마저 자연스럽게 오염되어 국가의 흥망이나 후손들의 앞날을 망각한 채 상대 후보지와 지지자들을 덩달아 적으로 간주하는 참담한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심한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21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이 국리민복을 위한 자신 있는 입법이나 활동을 했다고 손을 높이 들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오늘의 실사는 적성전투의 마지막 편이다. 특별공격 대대는 적정 탐색 목적에서 투입되었지만 적성리 전투에서 1차 승리를 거둔 뒤의 작전회의에서 적군과 충돌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달하고 보니 그리고 더 이상 대적하다가는 특별공격 대대 자체가 전멸을 변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상과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아직 이 지역으로 진입하였던 남쪽으로의 퇴로는 개척 가능하다는 것이였다. 대대장도 당시의 위기를 벗어나고 싶은 것은 솔직한 심정이었는데 미군 고문관들도 대대장이 결심을 촉구하였다. 대대장의 판단으로는 이곳에서 탈출은 할 수 있겠지만 그 대신
뉴스를 보면, 현직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노무현을 불량품이라고 한 양문석(경기 안산갑 후보)을 감싸며 옹호하는 이재명을 향하여 “노무현을 모욕한 자의 공천을 묵과할 수 없다며 막말 논란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자. 직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했던 유시민이 왈 ”돌아가시고 안 계신 노무현 대통령 애달파하지 말고, 살아있는 당대표한테나 좀 잘하라“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양문석이 던져놓은 “노무현 불량품”이라는 노무현 비하 막말을 두고 두 전·현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반응하는 뉴스를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정세균
오늘은 1951년 1월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 계속된 동로면 적성리 전투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미군 제10군단의 함경남도 흥남지구의 그 유명한 철수작전을 엄호하던 동군단의 한국군 특별 공격대대는 195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날 오후에 마지막 철수 부대로서 함경남도 연포 비행장에서 미군 수송기로 철수하여 이날 부산 수영 비행장에 도착하였다. 25일 동 대대는 부산 북방 50km 지점에 있는 1,209고지인 신불산으로 전진하여 잔여 공비 소탕 작전에 참여하다가 다시 북상하여 경주~영천을 거쳐 1951년 1월 10일에는
오늘은 낙동강 상류의 피아간의 각축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국군과 북괴군은 소백산맥 선에서 격전에 이어 국군 제8사단이 영주~안동선에서 제6사단과 제1사단 양개 사단이 점촌~함창 일원에서 혈전을 거듭하는 국면과 낙동강 교두보의 경계를 위한 제1군단과 제2군단의 양개 군단의 철수 상황을 수록해 본다. 전황의 추이를 개관하여 보면 아군의 선전, 선투로 소백산맥 선의 돌파가 지연되자 북한의 괴수 김일성은 7월 21일 사변을 일으킨지 28일 만에 수안보에 설치한 북괴군의 전선사령부에 직접 내려와서 “안동 ~함창~영동의 방어집단을 격멸
오늘은 미군 제35연대의 문경전투 가담과 유엔군의 오폭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7월 중순부터 지원활동을 전개한 유엔 공군은 그동안 주로 서부 전선에서 활동하다가 문경 전선이 위기에 처하자 두 차례에 걸쳐 제6사단의 작전 지역으로 출격하였는데 제1차 16:00를 전후하여 F80 전폭기 1개 편대가 충청북도 연풍 상공에 나타나 이화령 북쪽의 북괴군 전선을 강타한 바 있었으나 두 번째로 출격한 19:00에는 피아를 분별하지 못하여 크나큰 오폭 사건을 빚고 말았다. 즉 남호리에 집결 중인 아군 대열을 북괴군으로 오인한 나머지 네 차례에
오늘은 국군 제1사단의 문경 전투 참가와 반격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백선엽 준장이 지휘하는 제1사단은 7월 26일 신기리까지 북괴군에게 내어주고 그 남쪽 227고지와 487고지인 수정봉 선으로 물러났다. 이날 06:00에 제1사단은 군단장 유재흥 준장의 지시에 따라 영강 동쪽으로 우회하여 북괴군의 동측 배후를 공격하자 이보다 1시간 뒤인 07:00에 사단에서도 반격을 단행하여 유곡 부근의 상실한 모든 지역을 다시 찾음과 아울러 진격을 위한 전진 거점을 확보하였다. 즉 군단에서는 사단의 현 전선이 위태로운 것으로 내다보고 전날
겨우내 산천에 쌓인 눈과 얼음이 녹아 산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되고, 비가 내린다는 우수절기에 봄비가 내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나, 인간사는 심란하기만 하다.지난 18일부터인가? 어제까지 몇 날 며칠인지 헤아리기도 어려운 입춘 난동으로 벌어진 때아닌 입춘의 장마가 끝나고, (뭐 대략 일주 동안 날마다 오락가락하면서 어지럽게 몰아치던 비바람이 그치고) 봄볕이 드는 뒤꼍 봉성산 숲에 드러난 것은 고작 한 송이 떨어진 붉은 동백꽃이었다.바람 한 점 없는 오후 따뜻한 봄볕을 벗 삼아 뒤꼍 봉성산 숲을 산책하던 잠시 입춘 난동이
오늘도 유곡 문경 가은 부근 전투의 연속이다. 제16포병 대대 김성 소령이 대원들과 함께 육군본부의 방침에 따라 M-2 신형 야포로 교체하기 위해 떠나면서 그 임무를 인계받은 박영근 소령의 제3포대는 8문의 신형 포로서 지원 태세를 갖추게 되어 비로소 105mm 야포의 지원을 받게 되었거니와 당시 사단의 총병력은 포병 220명 경찰병력 200명까지 모두 합하여 8천 명 정도였으며 아직 병력을 충당 받지 못한 실정이었다. 뿐만이 아니라 장비 면에서도 포병을 제외한 모든 장비와 무기가 전쟁 발발 초전 당시에 그대로의 상태인 데다 야전
오늘은 점촌 유곡 가은 부근의 전투를 개괄해 보기로 한다. 우선 이 지역 전투의 개황을 살펴보면 제6사단장 김종오 대령이 문경 전투를 치른 데 이어 바로 그 남쪽의 점촌과 유곡 그리고 가은 부근에서 다시 북한괴뢰군 제1. 제13 사단의 침공을 막아 7월 19일부터 28일까지 10일 동안에 걸쳐서 전개한 전황을 기술하게 되는데 이는 곧 소백산맥의 방수진이 무너진 뒤로 낙동강을 넘어서기 직전까지의 지연작전 과정에서 중부 전선을 지켜낸 하나의 방어전이다. 6. 25가 발발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20일에 대전이 하오에 함락되고 곧이어
“한동훈의 공천 방식이 맘에 드십니까?”“글쎄 뭐 100%는 아니지만, 이재명에 비하고 클린스만에 비하면 훨씬 더 낫고 잘한다는 정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치초년병치고는 나름 지혜롭다는 건 사실이다.”“민주당 이재명보다 잘한다는 건 알아듣겠는데, 축구 감독 클린스만보다 낫다는 거는 좀? 그리고 뭐가 지혜롭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다른 하나를 빼서 다른 하나를 더하면 0이 되는 것이, 산술의 법칙이고, 만일 다른 수가 나온다면 그건 반칙이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충돌이라 서로 부딪쳐 무용한 수(쓸모없는 수) 즉 오답이
오늘은 제6사단 제2연대의 백화산 전투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먼저 제7연대의 전황부터 살펴보자. 제19, 제2 양개 연대가 조령과 이화령에서 공방전을 벌이고 있을 때 임부택 대령이 지휘하는 제7연대는 주력을 양분하여 사단 지역의 동쪽과 서쪽의 양쪽 측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즉 이남호 중령이 지휘하는 제3대대는 문경 동북쪽의 팔영산에서 갈평리 계곡으로 통하는 중요한 선을 먹고 김용배 중령이 지휘하는 제1대대와 김종수 중령이 지휘하는 제2대대는 횡계산~백화산 간의 서남쪽 고지에서 측 후방에 이르는 요소를 지키고 있었다. 따라서 사
오늘도 제6사단 제7연대의 옥녀봉 전투의 연속이다. 옥녀봉 재탈환 작전에서 북괴군이 남기고 도망친 뒤에 산야에는 북괴군의 시체들이 즐비하고 부근은 피바다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은 옥녀봉을 우회하여 작천리로 직행하였다. 그래서 대대는 깜짝 놀라 북괴군을 저지하려고 하였더니 철수 명령이 하달되어 원래의 진지로 퇴각하였다고 술회하였으며 또한 제5중대 제2소대의 소총수였든 김주호 이등병은 내 평생에 잊지 못하는 곳이 옥녀봉이다. 우리는 학도의용군 제1진으로 대전에서 지원해서 점촌으로 들어가 제7연대 소속으로 전선에 가담하였는데 도착한 지
오늘은 제6사단 제7연대의 옥녀봉 전투의 계속 편이다. 임부택 연대장이 문경시 흥덕동 출신인 제1대대장 김용배 중령에게 역습을 단행하여 제1중대의 진지와 305고지를 탈환하라는 엄한 명령을 받았으나 동 대대의 이대용 대위가 지휘하는 제1중대와 김명일 대위가 지휘하는 제3중대가 작천리를 거쳐서 무두실 계곡으로 북서진하였는데 이때는 이미 전황이 크게 기울어 현지에 진출하자마자 계곡에서 북괴군의 화력망에 빠져들게 되었으니 이로부터 제3대대는 옥녀봉의 동측에서 제1대대는 그 서쪽에서 각각 2개 대대 규모의 북괴군과 맞서 5시간 동안의 악전
1년 중 가장 춥다는 엊그제 대한(大寒) 절기 날, 비바람이 흩뿌리는 토요일 오전 멀리서 귀인이 찾아와 현 시국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찾아오신 귀인이 누구이고,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세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비바람을 피할 겸 구례읍 오거리에 소재한 찻집 허밍에 앉아 그리고 한솔식당에서 점심을 하면서 주고받은 많은 이야기 가운데 두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먼저 세상이 아는 공처가 대통령 윤석열이 뒤집어쓰고 있는 독박이며 풀지 못하고 있는 난제이고, 여당의 비상대책 위원장 한동훈의 발목을 잡아 죽이고 있는 물귀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