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재야! 새재여!

지구가 탄생한 이래 한반도가 위치하면서 아리수 이남에는 서쪽에 추풍령이 자리잡고 중앙에는 새재가 바쳐주고 동쪽에는 죽령이 감싸게 되었다. 이들 세 개의 고개길은 수 많은 애환을 간직한 령마루이다. 그 중심에 있는 새재는 문희경서라는 아름다운 사자성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새재가 위치하고 있는 문경은 산수가 아름다운 명승의 고장이다. 또한 문경은 새재를 중심으로 서쪽은 이화령이고 중앙은 새재이며 동쪽은 신라시대 계립령이라 불리든 하늘재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하니 산들의 고장이다. 명산들이 즐비하여 등산객들의 사랑을 흠뻑 받는 고장이다. 흔히들 새재라고 부르는 조령은 한반도 전역에 알려진 신령한 고개 마루로써 수 많은 애환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듯이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말씀과 같이 새재의 정상에 올라 뒤돌아 앞을 바라다 보면 홀로 푸르런 하늘 위에 올라 선 것같고 숲속을 걷노라면 더욱 옛 선인들의 정취가 감돈다 자연 그대로인 흙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 세워진 詩비들은 새재의 역사와 풍광을 말해주기도 한다. 근대에 새로지어지기는 했지만 고귀정은 경상감사의 교인식을 떠올리는 역사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채희영 전)경상북도의원
채희영 전)경상북도의원

교귀정 현판도 도로변 쪽의 글씨는 김계한씨의 글씨이고 산쪽의 글씨는 서예가 용곡 조용철씨의 작품인데 두사람 모두 고인이 되었으니 그 또한 역사가 되었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 그 얼마나 짧은가? 신묘한 대자연은 평생 보아도 모두 볼 수 없으니 말이다 말끔이 정돈된 산길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산등성이는 한없이 엄중하기만 하다. 봄바람의 애무로 나무들은 홀연히 가지를 뻗고 잎을 토하며 개울은 홀로 졸졸 흐르고 있다. 눈에 와닫는 모든 것들은 흠모의 마음이 저절로 일기도 한다. 청년시절부터 절친들과 함께 주말마다 찾던 곳이 아니던가?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도 현재의 삶에 불평하는 사람도 아니다 때때로 자신과의 의견차이를 다툴뿐이다. 정신은 자유롭고 양심적인 생활을 갈구 하지만 몸은 오히려 명분과 이익의 틈바구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지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연의 산수는 사실이고 문자는 허구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어느 사람은 말하기도 했다. 사람이란 하늘의 뜻에 순종하고 만물이 변화하는 자연법칙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모든 것은 자연에 맡기고 자연스러운 즐거움을 느끼면서 누린다면 삶에 있어 무었을 두려워하겠는가? 새재를 걷다 보면 높고 웅장한 산세는 이 봉우리와 저 봉우리가 맞닿으면서 좌측은 조령산이요 우측은 주흘산이다. 주흘산은 옛부터 영산이라고 말하여 왔다. 새재의 정상마루에 이르면 옹달샘에서 흘러내리는 실개천은 초점에 이르러 낙동강 시발점이라고도 한다. 좌측의 조령산은 이화령으로 이어져 백화산에 이른다. 백화산에서 추풍령으로 지리산에 연결된다. 6.25 전후 지리산 공비들 특히 이현상 부대의 북상 또는 남하 루트로 활용되기도 했다. 새재는 험준하고 가파른 절벽과 병풍처럼 넓고 큰 산 봉우리들이 첩첩이 이어져 천년의 장벽을 만들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물 위의 부평초처럼 물결치는 대로 이리저리 표류하는 삶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세속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번뇌와 우수로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무었이란 말인가? 새재는 대자연이 스스로에게 준 후원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모두 그림 속의 경치요 돌 바위 하나 물 한줄기 모두가 등산객들을 감동시킨다. 근래 만들어졌지만 제2관문인 조곡관 직전의 인공폭포는 처음 찾는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조곡관 현판글씨는 서봉 이동영 선생의 글씨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조곡관과 조곡교 중수도 서봉 선생의 사비로 이루어졌다. 인공폭포 밑의 물래방아는 옛날을 회상 시켜주는 교훈을 지녔으며 바로 그밑의 로변에 우뚝 서 있는“산불됴심”이란 석비는 오늘날의 대형산불을 예고한 듯 하다. 길손들의 마음을 깨우쳐 주는 교훈비이기도 하다 지구 탄생시 그대로의 길 새재의 흙길은 수많은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맨발로 걷는 남녀노소들에게 또다른 상큼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5.16군사혁명의 지도자였던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청년시절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임 발령을 받아 일제시절 근무하던 문경초등학교를 방문한다면서 새재로 넘어오겠다는 정보를 입수한 문경군청에서는 새재길을 포장하려고 급작스럽게 준비중인 것을 경찰정보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박정희 의장은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에게 긴급지시를 내려 훈령으로 포장을 못하도록 하기도 했단다.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교사시절 새재를 걷기도 했고 진남교의 강에서 수영도 즐겼다는 후일담도 있었다. 새재는 바람. 돌. 바위. 풀과 꽃 물 그리고 나무! 이 많은 대자연의 변화하는 모습은 필설로는 표현이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새재는 생명과 자연을 사랑하는 천하인의 새재인 것이다. 인생 80여년이 순식산에 흘러가서 얼굴에는 생기가 사라지고 머리카락은 백발이 되었다. 청년시절 걷고 또 걷던 새재이건만 노인이 된 몸으로 걸어보니 새롭기만 하다. 하지만 지금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천하의 새재이고 보니 그립기만 했단다. 젊은 날의 장대했던 꿈들은 저하늘 높이 뜨서 흘러가는 구름과 같은 것이었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껴도 본다. 보통 사람들의 몸부림과 모든 노력이 결국은 한줌의 먼지와 티끌이 되어 역사라는 잿더미 속에 파묻히고 후세 사람들의 개탄속에 잊혀질 것이 아닌가? 새재를 걸으면서 허무한 생각에 잠시나마 잠기게 되니 어느새 적막과 고독이 밀려오고 좌우 하늘 땅 나무 등 모두가 나의 벗인데도 우거진 좌우의 숲들은 고독을 재촉하기도 한다. 지나가는 걸음꾼 한 사람이 눈 인사를 하면서 웃음 띤 얼굴을 지었지만 그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상상해 보면서 쓴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다. 대자연의 위로를 받으면서 사람들은 모든 슬픔을 통해 욕망에 찌든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사람에게 베풀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어쩌면 사람이 자연을 즐기는 이유일 것이다. 불현 듯 누군가에게 내마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포효하고 싶어졌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이 불현듯 느껴졌다. 만감이 목구멍에서 들 끓고 생각들은 입에서 미끄러져 나온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아도 깊은산 무성한 숲 실개천이 촘촘히 흐르거나 또는 줄기차게 흐르는 물 지지배배 지져기면서 낮게 날고 있는 새들과 청설모 다람쥐 뿐이다. 앞뒤로 오가는 객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담을 나눌 수 없는 생명 부지의 사람들뿐이다. 함께 했던 옛 친구들은 노쇠하였다는 핑계로 함께 하지 못하니 안타깝고 서글프기만 하다. 이때서야 나는 홀로 걷고 있다는 천하의 외로움을 깨닫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순간 천지만물이 모두 나의 벗이란 것도 뒤늦게 느끼기도 했다. 제3관문인 조령관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제3관문의 좌측의 산비탈 산신각에 올라 등산가방을 조용히 벗어놓고 반절을 하면서 두손을 공손히 모아 무사히 올라온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내려오면서 옹달샘에서 물을 떠서 시원하게 마시기도 했다. 해갈이 되니 속이 탁 트이는 듯 했다 제3관문인 조령관의 정상에서 충청북도 괴산군 땅을 별 생각없이 바라보다가 돌아와 들마루에 앉아 오던 길을 바라보면서 늘상하는 버릇데로 두리번 그리면서 아름들이 전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뜨받쳐 불어오는 산바람은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왼쪽 산자락에는 주막이 있다. 친구와 함께라면 산나물 부침개와 탁주 한 사발 하면 천하일미가 되련만 혼자이니 입맛만 다시는 것으로 대신하고 말았다. 맑은 하늘아래 아지랑이가 하늘하늘 피어올랐다. 산수 자연이 사람보다 더 아름답다고 궂이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자연이 뽐내는 아름다움 역시 사람의 마음을 깊게 감동시키는 것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경험에 따라 자연의 위대함 산들의 심오함 그리고 사람에게 주는 영향들이 얼마인지를 가늠할 수가 인생 80을 넘어선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를 권하고 싶다 새재를 걷다보면 이름 모를 야생화가 각양각색의 들풀 사이에서 별처럼 찬란히 빛나고 꽃들의 향기는 코를 자극하기도 한다. 개나리 봇짐을 짊어진 선비들이 이길을 따라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한양으로 가고 합격한 선비들의 기쁜소식을 제일 먼저 듣는다는 문희경서의 길이기도 하다. 새재는 하늘의 섭리에 따라 묵묵히 답할뿐 사람의 생각을 따르지 않는다. 새재를 오른다는 것은 속세를 초월하는 마음가짐을 발굴하는 것이리라 자연계의 경관은 종종 사람이 사는 세상의 이치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 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항상 변하지만 천지자연은 변함이 없다. 이윽고 구름이 뭉게뭉게 모여 운해를 이루더니 산 중턱까지 모두 삼켜버렸다. 푸른산과 구름은 한 빛깔이 되고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일체가 되고 말았다.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격변에는 대자연도 변함없이 흘러가고 운행하고 있는 것이다. 구름은 순백의 비단처럼 바위를 덮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새재는 맑고 투명해진다.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험난한 인생을 살기는 했지만 그 곤궁한 시절에도 산을 찾고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고자 노력했었다. 마음이 편안하고 고요했기 때문에 세속적인 절박한 상황속에서도 안녕과 평화를 추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흑백이 비교되는 기묘한 주변의 절경은 말로는 표현하기 무척 어려운 곳이 새재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문필가라 할지라도 이 엄청난 자연의 절경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대개 산세가 높고 험준한 곳은 뇌우가 산 밑에서 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산 정상에 서게 되면 구름이 산 사이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라 정처없이 떠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구름의 줄기는 산 중턱에서 배회하고 구름의 수증기는 노들처럼 자욱하다 정말로 아름다운 새재가 아닐 수 없다. 옛 사람들은 구절양장의 산길이라고 표현했지만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있는 신작로이다 평소 세속의 명리에 급급한 사람들은 그 조급하고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힐 것이라고 필자의 경험에 의하여 확신하기도 한다. 사람의 영혼이란 물려받은 타락한 쾌락을 없앨 수 없으며 기끗해야 억제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우리라는 중심 없는 무한성 앞에 말없이 서 있기 때문에 산행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새재는 바로 여기에 부합하는 매력의 새재이기도 하다. 새재가 있기에 문경시민은 아니 대한민국 국민은 더욱 행복하다 할 것이다. 아! 천하의 새재여! 영원히 또 영원하리라!

동현 채희영

 

◈  알 림 ◈

문희저널은 새봄을 맞아 독자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소중한 분들의 다양한 글들을 올린다

『문희 퀘렌시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고자가 원하면 유튜브로 제작해서 눈으로 읽고,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독자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문희」는 고려시대 문경의 지명이며, 「퀘렌시아 Querencia」는 몸과 마음이 지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라는 뜻으로, 스페인어로 안식처, 귀소 본능 등을 뜻하는 말이다. 투우 경기에서는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장소를 퀘렌시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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