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강 주 막 (三江酒幕)!!!

 이곳 삼강주막(三江酒幕)에서 주모를 불러 '한 상 차려 주세요' 하면 컬컬한 막걸리 한 주전자와 현장에서 직접 제조한 파전이랑 두부, 그리고 메밀묵으로 차려진 상이 하나 뚝딱 나옵니다.

음식은 깔끔하고 맛나며 시골 아낙의 정성이 가미되어 제법 먹을만 하지요.  이곳 삼강주막은 그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이 이곳에는 태백 황지연못너덜샘에서 발원하여 장성 구무소 뚜루내를 거쳐, 석포 등 근 600여 리 거리의 산을 돌고돌며 안동 하회를 휘돌아 내를 이루고 평야를 만들며 나오는 낙동강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선달산(1,236m)에서 발원하여 남류 및 남서류하여 영주시, 예천군을 지나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 여기에서 낙동강 본류에 합류하는 길이 109.5km 낙동강 제1지류 이다.

이곳보다 맨 먼저 물을 맞이하는 천혜의 모래강, 낙동강의 어머니 강이 휘돌아 흘러 “물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수도리 무섬마을을 형성시키고 유유히 흘러 350도 회룡포를 휘 감아서 나오는 내성천,  저 멀리 5천년 그 이상을 흘러 내려온 역사의 흔적을 드러내고 묻으며 도도히 쉼 없이 흐르는 내성천은 천변에 비옥한 토지와 민초들의 애환 어린 전설을 간직하고 주모 유옥연 할멈인생역정 애달픈 사연을 길손의 구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영남지방의 모태 젖줄이 되지요.

그리고 경북 문경 동로의 천주황장산에서 발원한 금천이 만나 세 강줄기가 모이는 곳이라 그 이름이 불리워 진것입니다.

지금은 커다란 다리(삼강교)가 놓여져 나루가 없어 졌지만 옛날에는 경남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었고,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지나쳐 가야하는 곳이었기에 나들이객에게는 허기를 면하게 해주는 곳이었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되었던 곳입니다.

이곳을 지켰던 조선 마지막 주모유 옥련 할머니로서 그분은 1917년에 태어나 19살에 이곳에 들어와서 주모일을 하였다 합니다.  2005년 90세의 연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이곳에서 생활을 하셨는데 이곳의 뱃사공과 혼인을 하여 오남매를 낳았으나,  50년 전 남편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홀로 5남매를 키웠으며,  정이 많고 인심도 후하여 나그네에게 어머니,  누님과 같은 존재셨다고 하기에 분명 정(情)이 많음을 익히 저는 알았었죠.

살아생전 가끔식 저랑 뒷마당 툇마루에 걸터앉아 세월을 주저리주저리 엮어 올리며 한 모금 뿜어내는 담배 연기 속에서 그 간의 세월을 낚았던 주모와의 짧은 잦은 만남이 이제는 기억의 늪에서 여름날의 잔상으로 선하게 그려져 한 편의 영상으로 자취를 건져 흘러간다...............

이후 폐허가 되어 방치되었던 이 주막을 예천군에서 2007년에 복원하여 그 새로운 주모와 함께 나그네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동네 부녀회 및 직원들 약 10여 분이 나와서 주모의 역활을 맡고 있습니다.

맨 앞에 보이는 초가가 원래 주막이 있던 자리에 복원된 신식 주막.  방이 두 칸이고 처음 개시 땐 나그네 누구나 들어가서 주모를 불러 음식을 청하면 되었다.

아랫채 사공 숙소에는 전기판넬로 난방을 해 놓았으며 원 주막집 옆에 길객들이 막거리 잔을 기울일 수 있도록 설치한 초가지붕을 설치한 원두막형 술자리와 원래의 주막집을 복원한 뒤뜰의 모습에는 툇마루에 앉아 유 옥련 주모와 주고 받았던 지난날의 얘기가 묻어 나오는것 같지요.

윈래의 주막자리에 복원된 주막 처마 밑에는 옛 주막 모습의 사진들이 걸려 있고 열린 방문 밑에 봉당이 보이죠.  음식은 깔끔하고 맛이 있으며 모두 현장에서 주모들이 직접만든 것이기에 그 손 맛이 달고 가격도 대체로 저렴한 편이다.

주막 안벽의 다양한 낙서들은(상형문자 같은 표기)..... 들렀다 간 방문객들의 갖가지 사연들과 글을 모르는 주모만의 독특한 혼자만이 아는 외상장부 표기가 시대의 아픔과 그 세월을 가늠하게 하고 알려 주지요.

전체적인 전경으로는 주차를 할 수 있는 주차장소가 아주 넓게 마련되었으며, 화장실도 깨끗이 잘되어 있고 모든 것이 정갈한 편이다.

주말에는 수 많~은 방문객으로 장사진을.....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처소가 부족해서 공사가 계속해서 진행 중이며,  입구에는 지금 여러 건물과 500년이 넘은 팽나무가 오랫동안 삼강주막의 역사를 지켜보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하게 4계절 온갖 풍상에 가지가 부러졌지만 그대로 더 받침과 당겨짐으로 서 있는 곳이다.  오랜 세월 비 바람 맞아가며 길손과 주모에게 더 없는 한량으로 휴식의 넓은 그늘막을 제공해 준 정말 고마운 나무이지요.

살아 생전의 가끔은 들러서 유 옥련 할머니주막 뒷뜰 툇마루에 걸터 앉아 할머니랑 세월을 노래하고 나누었던 정담이 솔솔 피어나는듯 아련함이~~~

인적이 드물어 사람이 그리워서 못내 발길을 돌리기 미안할 정도의 그런 날들이 한 번씩 들릴 때마다 반가움에 넘 좋아하시던 생전의 모습이 생생히 묻어 나오지요 .  바로 저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 한 대 권하며 .........

복원 전의 폐허가 된 주막집의 풍경으로는 뒷쪽 커다란 팽나무만이 남아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새로이 복원이 잘 되었다. 뒤로는 나루를 대신하는 거대한 다리(삼강교)가 놓여져 1분이면 건너는 격세지감의 현장으로 멋이 사라졌다.

시대의 마지막 주모..... 유 옥련 할머니의 한 모금 길게 내 뱉는 담배 연기 속에서 나누었던 얘기가 새삼 가슴에 와 닿으며 당시 산역사의 책장에서 볼수 있었던 그런 모습이네요!!!!!

주막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는 회룡포 맞은편 비룡산 장안사에서 회룡대에 오르기 직전 우뚝한 아미타여래좌상의 엷은 미소가 보는 이의 마음을 너무도 편안하게 이끄는게 이곳이 곧 정토가 아닌가 싶네요

또한 회룡포 마을을 들어가기 위한 지름길로서 세워진 뿅뿅교 여름날 내성천 물이 많이 불어나면 잠기어서 수 십리 길을 돌아가야 하는 수고로움과 불편함이 있지만 육지속의 섬을 이어주는 고마운 다리로서 두 사람이 겨우 스위치 할 수 있을 정도의 폭과 100여 미터의 길이로 회룡대(回龍臺)에서 바라본 회룡포(回龍浦)의 모습이다.

역시 가뭄으로 물줄기가 가늘다.  350도 굽이굽이 한여름에 용트림같이 흘러 가던 도도한 물줄기와는 너무도 비교가 됩니다.  저 멀리 바라보면 산세의 형국이 하트모양을 영락없이 만들어 놓았는게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껴 볼 수 있지요!!

(한 번 찾아 보시는것도 괜찮을듯 하지요)

툇마루에 앉아 담매를 물고 계신 주모 유옥련 할멈의 모습
툇마루에 앉아 담매를 물고 계신 주모 유옥련 할멈의 모습
그늘막 주막채
그늘막 주막채
본채 주막 뒤 툇마루
본채 주막 뒤 툇마루
복원 후 처마 밑에 걸어놓은 옛 사진
복원 후 처마 밑에 걸어놓은 옛 사진
주모 한상 대령이요
주모 한상 대령이요
방문객들의 낙서 벽
방문객들의 낙서 벽
전체적인 삼강주막 복원된 모습
전체적인 삼강주막 복원된 모습
500년 된 팽나무
500년 된 팽나무
주막을 복원한 모습
주막을 복원한 모습
아래채 사공숙소
아래채 사공숙소
회룡포 마을
회룡포 마을
주막 뒤안의 모습
주막 뒤안의 모습
복원전의 슬레이트 지붕 (물론 처음에는 초가지붕이었겠죠
복원전의 슬레이트 지붕 (물론 처음에는 초가지붕이었겠죠
생전의 담배를 피시는 유옥련 주모 할머니의 모습
생전의 담배를 피시는 유옥련 주모 할머니의 모습
"비룡산 장안사" 법고대
"비룡산 장안사" 법고대
아미타여래좌상
아미타여래좌상
회룡포 마을 지금은 많이도 변했습니다!
회룡포 마을 지금은 많이도 변했습니다!
뿅뿅교 길이가 100여 미터
뿅뿅교 길이가 100여 미터
용궁역 방명록
용궁역 방명록
제2전망대 용포대에서 바라본 회룡포마을
제2전망대 용포대에서 바라본 회룡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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